씁쓸했던 완도 보길도 안내판
송대오(해남군체육회 고문)

2008년 09월 05일 (금) 10:26:31 해남신문 hnews@hnews.co.kr

   
     
아침 7시에 해남을 출발, 송지면 땅끝을 향해 보길도 관광길에 나섰다. 땅 끝에 도착해 아침 식사를 하러 식당에 갔더니 땅끝 일출봉 촬영을 위해 서울과 부산 등지에서 온 많은 사진작가들이 이른 아침식사를 하고 있었다.

배가 도착해 차를 배에 싣고 보길도에 도착했다.처음 가 본 보길도라 배에서 차를 내림과 동시에 설레는 마음으로 세연정을 향해 출발했다.

먼저 세연정에 도착, 세연정 안내문 앞에 가서 안내문을 읽었다. 읽다보니 내 상식으로 이해가 안간 부분이 있었다.

내가 알기로는 1633년 후금이 조선에게 황금·백금 1만냥, 전마 3000필, 세폐와 정병 3만을 요구했다. 그러나 인조는 후금사신의 접견을 매 거절하고 팔도에 선전유문을 내려 후금과 결전할 의사를 굳혔다. 당시 조선은 주화론자보다는 척화론자가 강해 청나라의 요구를 계속 묵살했다. 조선의 도전적 태도에 분개한 청나라 태종은 10만 대군을 스스로 거느리고 수도 선양을 떠나, 압록강을 건너 쳐들어왔다.

인조는 1만3000명 병력을 데리고 남한산성으로 갔으나 청나라 선봉군이 남한산성을 포위하였고 며칠 뒤 태종이 남한산성에 도착하니 성은 완전히 고립되었다. 성 밖에는 청나라 군이 무고한 백성들을 죽이고 노략질하기를 일삼아 인조가 할 수 없이 항복하면서 무릎을 꿇고 기어가는 굴육적인 항복을 했다.

윤선도는 병자호란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의병을 모집하여 왕자가 피신해 있는 강화도를 향했으나 인조가 청나라에게 굴욕적인 항복을 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울분을 참지 못해 세상과 결별하고 은둔생활을 하기위해 제주도로 향하던 도중 보길도를 발견하고 그곳의 뛰어난 경치에 반해 부용동이라 이름 짓고 정착했다.

관광객들은 제주도에 유배를 가다가 정착했다고 아는 사람들이 많다. 윤선도는 보길도에서 어부사시사 외 32편의 한시를 남겼고, 낙서재에서 책을 쌓아두고 후학을 가르치며 학문 활동을 했다.

난세에 나라를 걱정하는 선비로서 은둔생활을 하면서도 국문학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남겼으나 세연정 안내문에는 기녀들과 춤을 추거나 노래를 부르는 등 여흥을 즐겼다고 돼있어 관광객들의 사고방식을 흐리게 하고 있다.

또한 안내문에는 윤선도가 보길도로 오게 된 배경을 자세히 표기하지 않아 많은 관광객들이 제주도에 유배를 가다가 경관이 좋아서 정착했다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안내문을 읽고 씁쓸한 마음으로 발길을 돌렸다. 완도군 장보고 기념관에는 기와지붕까지 만들어 안내문이 아주 크게 영문과 한글 두 개로 나란히 설치해 있으나 보길도 세연정 안내문은 규모가 작다.

완도군은 1년에 50여만 명의 관광객이 오는 보길도에 안내문표기를 제대로 해주고 최소한 장보고 기념관의 안내문 규모로 설치해줬으면 좋겠다.